가정교회 기적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 어머니의 영접과 소천 – 두번째 이야기 )
본문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 어머니의 영접과 소천 – 두번째 이야기 )
[어머니의
영접과 소천] 이라는
드라마의 두번째 나눔을 글로 옮겨 적는다.
첫번째의 나눔은 < 하늘 창고에
보물을 쌓는 다는 것의 의미 > 였다.
그리고
두번째 나눔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는다면? 그 밀알은 새의 먹이가 될 수도 있고, 말라 죽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썩어 땅 속에서 영양분이 되고 싹을 틔워 하나님의 꿈으로 자라날 수도 있다.
하나님은 밀알을 우리에게 공급하실 때 그 하나의 밀알이 어떻게 싹이 나고 줄기가 세워지며 나무로 자랄지 보라고 하신다. 큰 꿈을 꾸라고 하신다.
오늘 두 번째 이야기는 “어머니의 영접” 이라는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서 저와 제 아내가 어떤 꿈을 꾸도록 인도 하셨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이 가정에 심으신 나무가 저희 부부를 통해 어떤 나무로 자라나도록 이끄셨는지에 대하여 나누고자 한다.
첫번째는 어머니가 영접 하시던 날부터 임종까지 모든 과정을 먼저 알려주신 하나님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어머니 영접이후 소천까지의 모든 과정들에서 나 그리고 아내와 함께 하셨다. 아무도 어머니의 삶을 예측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내게 그 모든 과정을 예측할 수 있도록 도우셨다. 몇 년이 걸릴 투병 생활이 될 거라는 의사들의 판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게 최대한 자주 부산을 찾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어머니가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지시기 1시간 전에 아내를 병원에 도착하게 하셨고, 프랑스에 출장 가 있던 내게 부산에 막 도착한 아내에게 급히 전화를 걸라고 명령하시고는 순종하게 하셔서 나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도우셨다. 그렇게 국제 전화를 하고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어머니는 혼수상태가 되셨고 그 이후로 소천하시기 까지 우리는 어머니와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다. 특히 그 마지막 대화가 어머니 살아 생전에 내게 가장 자주 하시던 말씀인 것은 더욱 놀랍다. “ 내 사랑하는 아들이로구나 “ ….아내는 어머니가 당시 거의 말을 못하셨다고 했고 더욱이 하시는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이 너무 또렷하게 들렸었다. 이것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또 감사했던지.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해 진다. 이 땅에서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로구나 “ 였고 그 대상은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멀리 있었던 나였다.
어머니가 혼수상태가 되신 후 2주일 지나자 의사들은 이런 식으로 얼마나 어머니가 살아 계실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나의 아들과 딸 곧 어머니의 손주들이 살아 계신 어머니를 만나 보게 하기 위해 부산으로 데리고 갔고 어머니는 그 다음 주에 소천하셨다. 아마 그때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가 뵙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이십 년 이상 만나왔던 할머니를 뵙지도 못하고 장례를 치를 뻔 하였다. 그 때 하나님은 그 주가 아니면 손자들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마음을 내게 강하게 주셨고 나는 그 음성에 순종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다. 나는 이 사실을 아들과 딸에게 나누었다. 우리의 삶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그들이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소천하시는 날도 그랬다. 어머니의 상태가 나쁘다는 전화를 받기 전에 예상 못한 원로목사님의 교통사고로 갑자기 설교를 대신 하시게 된 부목사님이 <죽음을 앞두고 영접하시는 부모님>에 대한 말씀을 하셨고 <진실한 아멘 만으로도 천국에 가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그때 큰 은혜를 받았다. 그렇게 예배를 마치고 나오자 부산에서 어머니의 상태가 나빠지셨다는 카톡이 왔고 나와 아내는 부랴부랴 부산행 기차표를 끊었다. 역으로 가기 전 살짝 상태가 나아진 어머니로 인해 의사인 형이 내려오지 말라는 전화가 왔지만 그날 예배가 예사롭지 않았던 터라 나는 부산에 가는 계획을 바꾸지 않았고, 결국 그 날 저녁에 어머니는 소천 하셨다. 우리 부부가 형의 전화를 받고 내려가지 않았더라면 우리 부부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 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두고두고 후회와 자책으로 남을 일이었다. 아둔한 내게 강력한 예배의 메시지를 통해 부산행을 결단하도록 이끄신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이들에게도 이 사실을 간증했고 이 또한 아이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음에 또한 감사한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1시간 30분 동안 어머님과 단 둘이 중환자실에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특별히(?) 주어졌고 기도와 말씀 봉독 그리고 찬송가 410장 찬양으로 어머니와의 영적 장례를 치르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하셨다. 당시에 어머니의 상태는 나쁘기는 했지만 안정적이어서 돌아가실 듯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주일인 그날 어머님이 소천 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 1시간 30분을 육신의 어머니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영적 장례예배로 드렸다. 그리고 예배 후 어머니의 맥박이 40에서 80으로 복구되는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의사인 형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즉 죽음을 앞둔 육신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도 혼수상태 이셨던 어머니가 영적으로 드린 나와의 예배에 함께 하셨다는 것을 내가 알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그날 주일 밤, 어머니는 당신이 사랑하시던 모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세상에서 세상의 종 노릇을 하며 살다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영접하시고 천국으로 떠나시는 복된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거룩한 과정이었다. 너무나도 슬퍼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나는 어머니와 영적 예배를 이미 치른 후라 마음의 안정을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육신의 이별의 아픔은 지금도 내 가슴 속에서 큰 슬픔으로 남아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두번째는 형 내외의 구원을 위해 일하신 하나님이다.
어머니와 평생 삶의 궤적을 함께 하신 형수님의 어머니 또한 많이 아프셔서 형수님은 어머니와 자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힘들어 했고 가족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였지만 불행히도 지원을 잘 받지 못하고 홀로 고분군투 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형수의 동생과 올케 사이에서 분노하고 갈등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우리 부부를 사용하셨다.. 세상의 방법으로 갈등의 문제를 다룰 뻔 했던 형수님에게 하나님은 아내를 통해 사랑이신 하나님을 듣고 보게 하셨고 아내에게 형수님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셨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희생과 헌신의 기쁨을 형수님에게 맛보아 알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폭풍과도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복되고 행복한 삶인지를 스스로 경험하게 도우셨다. 그리고 우리를 형님의 병원 앞에 있는 오산교회 예배에 출석하는 상황을 허락하셔서 그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형님 내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셨다. 물론 그 교회 카페로 초청한 우리 부부의 청을 형님이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영접을 기회로 형님 부부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실 지 기대가 된다. 어머니께서 그렇게 소천하시고 난 후 형님은 어머니 영접을 위해 애쓴 내게 고마워 했다. 이 또한 감사할 일이요 하나님께서 형님을 통해 앞으로 일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세번째는 장례 중에 남은 유족들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세밀한 돌보심과 은혜이다.
단 하루의 조문, 부산이라는 먼 거리에서 치러진 장례 임에도 하나님께서는 부산에서 부고를 보낸 형님의 조문객들과 여동생의 조문객들에게 특별한 마음을 주셔서 조문객과 화환이 끊어지지 않고 문전성시를 이루도록 만드셨다. 그리고 수원이라는 먼 거리에서 온 나에게도 수많은 화환과 먼 길을 마다 않고 조문을 하는 조문객들이 오는 은혜를 허락 하셨다. 남겨진 아버지에게 그리고 유족들에게 특별히 소천하신 어머니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셨다는 것에 대한 이 보다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형님과 동생 그리고 나의 마음을 만지셔서 언제나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시는 아버지의 들쭉날쭉한 감정선에도 갈등이나 불화없이 장례를 무사히 잘 치르도록 도우셨다. 영접을 하셨기에 기독교 장례를 치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가족들의 화합을 더 우선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유교식 장례가 치러져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기독교 장례가 되도록 도우셨다. 조문하는 날 시은소 교회에서 13분이나 오셔서 빈소 바로 옆 방에서 장례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셨다. 아내는 빈소를 지켜야 하는 나 대신 그 예배에 참석해서 큰 은혜를 받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경험했다고 했다. 특별히 우리 집안 유일한 크리스천인 작은 아버님께서 그 예배에 참석하시고 큰 은혜를 받으시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발인 날에도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다. 그렇게 하나님을 영접하신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유교식 제사로 보내고 싶지 않았던 내게 하나님은 총배덕 목사님 – 어머니를 영접하도록 이끄신 목사님 – 과 영적 동역자 이현우 집사를 보내주셔서 어머니의 천국여행에 함께 하도록 이끄셨다. 발인이 진행되는 내내 하나님께 온전히 그 모든 행사를 맡겨드렸는데 하나님은 유교제사를 주도하던 사회자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발인 제사 중 총배덕 목사님을 높이 세우도록 하시고는 아버님이나 다른 유족들의 반대 없이 발인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셨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였다. 목사님은 말씀을 높이 선포하시고 아름다운 기도록 온 가족이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고 경험하는 은혜를 우리 가족들에게 베푸셨다. 할렐루야! 지금도 그 때 그 제사 주관자가 목사님을 찾을 때의 감동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발인이 다 끝나고 이틀 후 삼우제를 지내는 날까지 하나님은 두가지의 기적을 더 베푸셨다. 하나는 사랑하는 아내를 땅에 묻고 왔다고 절망하시는 아버지 앞에서 하나님은 아내에게 빛과 같이 빛나는 환한 모습 환한 얼굴의 어머니를 보여주셨고 아내는 지혜롭게 그 영적 경험을 아버지에게 설명했다. 차가운 땅에 어머니를 묻었다는 괴로움을 당하고 계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밝아지고 고통스러운 마음이 해소 되는 일이 일어났다.
마지막 기적은 삼우제 당일 아침 날씨였다. 오후에 드리기로 한 삼우제 당일 아침은 을씨년스럽고 추웠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를 약속하셨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가족들에게 선포했다. 하지만 묘지로 가는 중에도 날씨는 좋아지지 않았고 해가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묘지에 가까이 가면서 묘지 쪽에서부터 정말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이 너무 놀라워 사진을 찍었다. 하늘 가장자리를 마치 칼로 잘라 놓은 것처럼 구름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삼우제를 지낼 때는 하늘이 완전히 개였다.. 너무나도 따뜻하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아름다운 날이었다. 천국의 날씨 그 자체였다.
우리는 그렇게 어머니를 천국으로 보내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순간순간 마다 함께 하신 하나님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기록하고 동역자들과 나누라고 내게 명령하셨다. 이 글을 읽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특별히 가족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애쓰는 이들이 그들의 기도를 하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 놓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기 원한다. 그들의 기도는 공중에 흩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 창고에 보물처럼 쌓여 있으며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 때 차고 넘치도록 이 땅에 부어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기를 원한다.
“ 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리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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