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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일터예배 설교 말씀 - 사람은 무엇으로 예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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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빛의 사도 작성일 13-07-22 22:52 조회 30,17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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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예배하는가?

총배덕 목사

2013.7.6

20136월 일터 예배

 

< 시편 50 : 22~23 >

22.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사람의 혀는 가장 값진 것이기도 하지만 가장 천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혀를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혀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이 혀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담아야 할 것입니다.

 

몸이 귀하게 되어 세상에 빛날 만 하다 가 감사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행위가 감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감사는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가 닿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그런 감사의 은혜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예배를 기뻐 받아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피흘림의 제사가 아니라 감사의 제사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감사는 훈련이 되지 않으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끝까지 감사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 기도 응답을 받으면 감사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응답에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당연한 것이지만, 다시 불평하게 되는 것이 사람들의 감사인 것입니다. 꾸준하게 감사하게 되는 자가 진정으로 감사하는 자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우리가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행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와 세상 종교의 구별점을 봅시다.

 

불교의 구원의 조건은 선행입니다. 최고의 가치를 선행으로 중시하는 것입니다. 선행은 자기가 자기의 노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적 선행은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선행이 평가의 기준이 있을까요? 불교에서는 예수님이 최고의 선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행을 통해서 기독교와 혼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선행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는 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선행으로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가족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그리고 스치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내면의 아이가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른으로 자라지 않으면 자꾸만 외부의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자,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있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물질이나 시간의 내어드림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감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수 있는 자, 곧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자기기만이 아니냐? 어떻게 감사할 수 없는데 감사하냐? “ 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지 않고는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염려가 걱정이 환란이 닥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담대함을 얻도록 하셨기에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다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기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평강으로 이끄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환란 중에 계십니까?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환란이 걱정이 염려가 없는데 기도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언제 가장 간절합니까? 몸이 아플 때 우리는 기도로 나아가게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감사로 드리는 예배의 결과물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예배의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붙드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붙잡은 이가 무엇을 두려워 할까요?

 

두 번째 죄에 대한 민감성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회개가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죄에 대한 회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윤리와 도덕적 회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잊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들고 십자가 앞으로 다시 나아가는 회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교회에 윤리적 회개를 촉구하지만 정작 교회가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죄에 물들어 가는 자신들에게 뿌려질 소금의 아픔을 그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 번째, 교회가 새로워지고 생동감이 생깁니다. 행위의 생동감이 아니라 기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음에 우울함을 가졌던 사람들도 그 교회의 생동감으로 인하여 우울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새로워지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터의 사역자들이 그렇게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터가 일터사역자들로 인하여 생동감이 전파될 때 세상의 일터는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증거의 결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던 회사가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의 자리로 나오지 않던 예배자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감사로 예배하는 자들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증거의 결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영적 부흥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이 그 자리를 메우시는 것입니다. 쭉정이와 알곡을 구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종교적 신념이나 불안으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 쭉정이로 분류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늘 감사의 제사를 드림으로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를 부흥의 자리로 만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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