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예배 제2기 -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 2018년 7월 예배 - 총배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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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울 작성일 18-07-30 23:42 조회 3,306 댓글 0본문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총배덕 목사
2018.7.28
2018년 7월 일터 예배
( 시은소 4남 전도회 연합예배)
< 데살로니가 전서 2:4>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오늘 일터예배를 드리는 자리에 모인 이유는 복음을 위탁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것을 행하고 살아갈 때에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우리의 스펙이 뛰어나서 우리에게 복음을 위탁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중심을 아시기에 위탁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용모와 키를 보고 취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중심은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일터 사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토바이를 타는 부부가 있었는데요 그는 오토바이를 수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5천원만 받고 오토바이를 수리하는 이 집사님은 “ 복음을 전하고자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오토바이 집사를 보면서 복음 전하는 자, 복음을 위탁 받은 자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삶을 보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위탁 받은 자는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중심입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삶에 닥친 부당함을 불평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을 산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로 복음을 위탁 받은 자로 살아가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차별이 인구에 회자되는 시대입니다. 예수님은 차별하는 분이 아니라 구별하는 분이셨습니다. 나를 구별하여
구원 하셨는데 내가 스스로 차별가운데로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제자들이 서로를 차별 하고 있을 때 바구니
를 내려 보내시면서 내가 깨끗하다 한 것을 더럽다고 하지 말라 라는 말씀을 주심으로 차별을 넘어 구별하
는 복음의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차별할 수 있지만 그 차별을 이겨낼 힘은 하나님이 주
시는 복음을 증거하는 힘과 사명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음성을 분명하게 알아들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핍박하고 차별하지만 우리는 구별된 자로 우리에게 주어진 한 영혼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에는 무신론적 기독교인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듯 살아가는 기독교인을 무신론적인 기독교인이라 말합니다.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정의하고 하나님의 존재 유무를 판단하는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불위 하시며 무소부재하신 분이라는 것을 일상의 삶에서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영생의 기쁨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복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인정하지 않는 삶을 삽니다. 때로는 분노하고 하나님께 도전하기까지도 합니다.
일터에서 자기 상사에게 하나님에게 하듯이 원망하고 분노하고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잘리지 않겠습니까? 사람을 대할 때도 그렇게 대하지 않는데 하나님을 대하며 어떻게 비인격적인 말과 태도로 대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삶에 중요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는지를 돌아보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중심을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물론 처음보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는데, 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갑질 하듯이 기도 하고 반응하는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날마다 세워져 가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결단이 나와야 하는 곳이 바로 일터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정성과 시간과 심지어는 목숨이라도 걸 것처럼 살아가는 곳이 일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신앙 고백은 바로 일터에서 흘러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골방에서 은혜를 받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후 일터에 나아가서는 사명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스데반의 순교 후 예루살렘에 박해가 일어났을 때를 기억해 봅시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성령이 임하시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박해 가운데 세상으로 흩어진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성령이 임하니 예루살렘과 유대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흩어져서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는 것을 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았다면 어떤 상황 어떤 땅에서도 그 복음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땅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이 다시 안 오실까요?
땅의 개념을 지도의 개념으로만 보지 말고 확장 시켜 봅시다. 일터를 확장적의미로는 땅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곳이 일터라는 확장성을 감안한다면 아직도 미전도 지역이 너무나도 많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 마음을 지키며 세상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믿으셨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에게 복음이 전해 질 수 없으니까요.
우리가 그럴 만 한 존재인가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 안에 있다면 그리고 우리 안에 그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복음을 위탁 받은 자들이 맞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곳이 바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곳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렇게 은혜의 삶을 살고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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