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예배 제 2기 - 하나님 안에서 성실히 살아라 ( 2019.8 - 총배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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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울 작성일 19-08-31 10:50 조회 3,375 댓글 0본문
성실히 살아라
총배덕 목사
2019.8.31
2019년 8월 일터 예배
<시편 37:1~6>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우리가 성실히 살기 위해서는 조건이 따르는데 그 전제는 주님만을 따르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어떤 상황에서도 따르는가?
주님만을 의지하는가?
믿음을 가진 사람들 간의 예배에도 서로 다른 상황이 만들어 집니다. 믿음 안에서 서로 합력하게 된 사람들 사이의 예배에는 주님의 은혜가 사랑이 그리고 신뢰가 흘러갑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어색하기 그지 없는 예배의 자리가 만들어 지고는 합니다.
죄를 다룰 기회가 있었던 예배가 기억납니다.
인간 안에 있는 죄성에 대해서 생각하는 부분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예배였습니다. 이제 막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한 지체도 있었고 신앙을 가지고 있는 지체도 있었지만 이 죄에 대한 해석이나 수용이 너무 서로 다른 상황에서 말씀을 전하기가 너무 힘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문제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저 교회에 나오면 구원을 받는 가요? 그런 것인가요? 집을 사는게 쉬울까요, 구원을 받는 것이 쉬울까요? 여러분들은 무엇이 더 어려운 것이라고 여기세요? 아마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구원이 집을 사는 것보다 더 쉽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본 헤퍼 목사님은 “싸구려 은혜가 기독교를 망친다” 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지금도 그 당시처럼 싸구려 은혜가 기독교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잘 살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못살게 되는 것인가요?
복음이 그렇게 물질로 설명될 수 있는 그런 것인가요? 은혜가 물질로 대변 될 수 있는 것인가요? 복음이 경제 발전으로 설명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경제를 부흥시킨 사람이 메시아가 되는 것인가요? 그렇게 판단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절대로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수 없습니다. 고난 앞에서 우리가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것, 내 형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복음이 아닌가요?
죄의 고백이 없는 성만찬,
십자가 없는 고백이 만연하는 이 믿음, 이 신앙이 우리를 어떻게 진정한 죄의 고백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까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 순간순간 돌아보아야 합니다.
모든 순간 순간 마다 주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는 고백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고백인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진정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돌이킴이 회개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그 돌이킴이 싫어서 길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안 가면 죄가 없어지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든 가지 않든 그 죄의 문제는 돌이킴이 없이는, 그 길을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대로 돌이킴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아라 “ 라는 시편의 말씀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 의뢰함 ‘ 이라는 말을 또 생각해 봅시다.
의뢰함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문제를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의뢰한다는 것은 나의 삶을 하나님께 부탁하고 의지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선을 행할 때 돌아올 유익을 먼저 계산 하고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께 의뢰할 때 계산을 먼저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행하고 맡겨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시선은 거기서 벗어 났지만 아직도 내 손을 잡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비록 내 생각과 내 계획은 벗어 났지만 여전히 나의 손을 놓지 않고 계시는 그 분을 보며 돌이켜야 합니다.
선을 행하고 그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는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러분 중에 VIP 대접을 받아요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신가요?
그냥 친절이 아니라 엄청난 환대를 받는 분들,
“ 어서 오세요 “ 가 아니라 “ 아 오셨네요, “ 라는 말을 들으시는 분들이 바로 그런 분들입니다.
한식 부페에 가 보신 적이 있으시죠? 거기에 가면 “음식을 남기지 마세요” 라는 안내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잔반통에는 항상 잔반이 넘치도록 담겨져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음식을 있는 대로 담아와서 많이 남기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기도하고 목사님 집사님 권사님이라는 호칭을 마구 부르면서 음식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음식을 정성으로 준비한 사람들에게 그런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요?
내 것은 누구나 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합니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최선을 다 하고 있나요?
내 것이 아닌 음식에도 그 음식을 만드는 분들의 마음으로 먹고 치우고 계신가요?
저는 간곡히 부탁합니다. 일터 사역자들이 자신들이 다니는 식당에서 카페에서 VIP 대접을 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최선을 다하는 일터사역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삶을 살 수 있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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