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예배 3기 (온라인 줌예배) - 구하는 자, 찾는 자, 받은 자 (총배덕 목사 (202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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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울 작성일 21-06-01 08:46 조회 573 댓글 0본문
(고린도전서 1:18-25)
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바울 사도는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표적을 구한다는 것은 체험적, 경험적인 것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를 찾는다는 것은 현상적인 것과 철학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만 받아 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표적을 보여 달라는 이들에게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표적을 구하는 것과 지혜를 찾는다는 것은 겉으로는 다른 듯 하나, 속으로는 같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것은 말씀에 순종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지혜를 찾는 것은 항상 자기 유리한 쪽으로의 합리화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중에 그런 부류들이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필요하고 유리한 쪽으로 말씀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신앙..사실 신앙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자기 유익을 위하여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은사도 함부로 사용하였습니다.
2천년전 고린도교회의 모습이나 오늘의 교회의 모습이 다를것 없이 상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성경 말씀을 이용하는 경우들도 종종보기도 합니다.
1807년도에 영국에서 ‘Negro bible(흑인노예성경)’이 제작됩니다.
이 성경의 제작 목적은 식민지로 통치하던 서인도 제도에 파송받은 선교사들이 그곳에 있던 노예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제작한 것입니다.
노예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만든 성경책이다보니, 그들에게 불필요로한 말씀들을 빼고 편집한 성경입니다.
예를들어 출애굽기1장부터 18장까지 나오는 내용등, 자유와 해방, 평등에 관련된 내용들은 빼고 노예들에게 필요로한 복종,순종등의 내용들만 넣고 편집하였습니다.
특별히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등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자유, 평등을 뺐습니다.
오늘날도 니그로 성경과 같은 행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편취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게 여기는 부분 말씀만 약속의 말씀으로 여기고 그 부분만 읽습니다.
복의 관련된 성경구절, 위로와 힘이 되는 성경구절, 은혜와 약속의 성경구절, 즉 자아실현을 위해 그런 말씀만 편취하여 읽습니다.
자기에게 유익하다 여기는 말씀만 읽습니다.
죄와 회개, 의무와 책무의 말씀은 읽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에게 유리한 말씀만 하나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이들은 윤리만 강조하거나, 은혜만 강조합니다. 또 사회적 참여만 강조합니다.
성경 전체를 읽고 묵상할 수 있는 지혜를 길러야 합니다.
보고 싶은거만 보고, 믿고 싶은거만 믿는 편향된 신앙이 아닌 균형잡힌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균형잡힌 신앙인이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 능력과 지혜로 이 땅에 맡겨주신 삶을 능히 살아냅니다.
또한 부르심을 받은 자는 고린도전서 13:2에 말씀하듯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가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방법은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6:18-19의 말씀을 살아내는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바울 사도는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표적을 구한다는 것은 체험적, 경험적인 것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를 찾는다는 것은 현상적인 것과 철학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만 받아 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표적을 보여 달라는 이들에게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표적을 구하는 것과 지혜를 찾는다는 것은 겉으로는 다른 듯 하나, 속으로는 같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것은 말씀에 순종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지혜를 찾는 것은 항상 자기 유리한 쪽으로의 합리화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중에 그런 부류들이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필요하고 유리한 쪽으로 말씀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신앙..사실 신앙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자기 유익을 위하여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은사도 함부로 사용하였습니다.
2천년전 고린도교회의 모습이나 오늘의 교회의 모습이 다를것 없이 상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성경 말씀을 이용하는 경우들도 종종보기도 합니다.
1807년도에 영국에서 ‘Negro bible(흑인노예성경)’이 제작됩니다.
이 성경의 제작 목적은 식민지로 통치하던 서인도 제도에 파송받은 선교사들이 그곳에 있던 노예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제작한 것입니다.
노예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만든 성경책이다보니, 그들에게 불필요로한 말씀들을 빼고 편집한 성경입니다.
예를들어 출애굽기1장부터 18장까지 나오는 내용등, 자유와 해방, 평등에 관련된 내용들은 빼고 노예들에게 필요로한 복종,순종등의 내용들만 넣고 편집하였습니다.
특별히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등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자유, 평등을 뺐습니다.
오늘날도 니그로 성경과 같은 행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편취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게 여기는 부분 말씀만 약속의 말씀으로 여기고 그 부분만 읽습니다.
복의 관련된 성경구절, 위로와 힘이 되는 성경구절, 은혜와 약속의 성경구절, 즉 자아실현을 위해 그런 말씀만 편취하여 읽습니다.
자기에게 유익하다 여기는 말씀만 읽습니다.
죄와 회개, 의무와 책무의 말씀은 읽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에게 유리한 말씀만 하나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이들은 윤리만 강조하거나, 은혜만 강조합니다. 또 사회적 참여만 강조합니다.
성경 전체를 읽고 묵상할 수 있는 지혜를 길러야 합니다.
보고 싶은거만 보고, 믿고 싶은거만 믿는 편향된 신앙이 아닌 균형잡힌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균형잡힌 신앙인이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 능력과 지혜로 이 땅에 맡겨주신 삶을 능히 살아냅니다.
또한 부르심을 받은 자는 고린도전서 13:2에 말씀하듯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가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방법은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6:18-19의 말씀을 살아내는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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