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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은소 교회에서 향기가 나는 이유

 

관계라는 집은 신뢰라는 골조를 올려야 하고, 좋은 기억과 경험들을 하나씩 둘 씩 쌓아서 벽을 만들고 기둥을 세우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게 완성도가 높아진 관계는 견고함을 가지게 되겠지요..

 

깨어지고 떨어져 나간 관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관계가 깨어지고 신뢰가 무너졌다고 해도 누군가가 그 깨어진 곳을 막는 창문이 되고 그 새는 지붕을 막는 기왓장이 될 때 그들의 관계는 더욱 견고하고 향기를 발하는 관계로 발전할 것입니다. 관계라는 이 집은 보수한 곳이, 다시 치유한 아픔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높은 가치로 발전하는 집이 될 것입니다.

 

거센 바람이 들이치는 위기가 내 삶에 닥치고 비가 새는 어려움이 몰려와도, 스스로 창문이 되고 지붕 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 애쓰는 인생이 존재하는 한, 세상은 언제나 높은 가치를 향한 가능성으로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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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금요 철야 예배에서의 일이다. 아웃리치로 다녀온 출장 중에 하나님의 많은 임재와 은혜를 경험하였지만 귀국 후 밀려 있는 일들과 적지 않은 회사의 난제들을 풀어내느라 미국 아웃리치 중의 은혜가 순식간에 고갈되는 일주일을 보낸 후 영적 갈급함을 느껴 금요 철야에 아내와 함께 참석을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배 중에 은혜가 회복되지 않았고 집중하기 쉽지 않은 예배시간을 보내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그 음성은 <>에 대한 것이었다. 세상의 집과 하나님의 집에 대한 차이를 묵상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를 경험했다.

 

세상의 집은 완성도가 중요하다 하셨다. 50% 보다는 70%, 70% 보다는 90%.  %가 높아질수록 그 집은 견고하고 높은 가치를 가진 집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집은 그 완성도와 가치를 매기는 기준이 아주 다르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얼마나 견고하게 그 집에 머무르는가 하는 것은 세상이 세상의 집의 견고함과 가치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내가 얼마나 거룩한 시간을 보냈고, 내가 얼마나 사역에 헌신했으며, 내가 얼마나 성경을 가까이 하고, 내가 얼마나 큐티를 충실하게 하였는가 라는 기준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지은 내 집의 견고함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99%의 충실함으로 매일의 삶을 거룩하게 보냈다고 해서 하나님을 그가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자신이 보기에 거룩한 크리스천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서 그가 견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거꾸로 이야기 하면 누군가가 세상에 붙들려 살아가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지금 기도생활을 매순간 충실하게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나라에 세워진 그의 집이 당장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정반대이다. 비록 99% 거룩한 삶을 살고 있는 인생이라고 해도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 한 삶이라 내심 여기고 있다면 그 삶에 진리가 임할 틈은 없다. 그러니 그 삶이 오히려 위기가 아닌가? 그러니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완성도를 논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시험이다.

 

하나님은 내 안에 말씀하셨다.

정국아, 기도할 만한 때, 기도할 만한 삶이란 없다. 기도할 만큼 준비된 상황은 없다. 네가 99% 견고한 믿음의 집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고 있든, 온통 찬바람이 들이치고 빗물이 온사방에 떨어지는 다 쓰러져가는 집에 앉아있다고 해도 그것이 기도를 막을 이유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바로 그 때가 전심으로 기도해야 할 때가 아니냐? 지금 내가 너의 기도를 듣는 것은 네가 거룩한 생활 가운데서 준비된 기도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너에게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이유 뿐이다. 나는 그거 하나면 된다

 

나는 금요 철야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당신은 우리가 완성된 모습으로 나오려고 애쓰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것을 싫어하시지는 않으시지만 우리가 준비될 때까지 참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만 당신에게 나오려는 것을 안타까워 하신다. 아버지니까. 그 아들을 그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니까. 옆집 아저씨는 이웃집 딸과 아들이 예쁘고 단정한 모습을 보여 줄 때 좋은 모습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버지시니까 당신의 아들과 딸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당신에게 나오기를 원하신다. 그게 신뢰고 그게 진짜 사랑이니까.

 

그러니 기도하지 못할 때 란 없다는 것을 배웠다. 비록 나의 지난 한 주간의 삶이 세상에 더 가까이 있었고거룩함의 완성도가 떨어진 시간들이었지만, 그래서 내 마음이 쉽게 예배에 그리고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은 내게 그것이 당신의 집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아니라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나의 생각일 뿐,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생각과 상태로 당신에게 나오는 것을 더 기뻐하시고 즐거워 하신다는 것을 말이다.

 

이어지는 담임목사님의 기도와 고백이 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습교회, 부자세습도 모자라 형제세습까지 한 교회라는 오명 가운데 서 있는 담임목사님과 그리고 그 교회를 섬기는 교역자들, 그런 교회를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는 성도들,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는 글들과 세상의 시선 앞에서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믿음으로 이 시련을 극복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은 내 안에 <> 이라는 말씀을 다시 주신다.

 

< 여기저기 깨어진 창문이 보이고 곳곳에 빗물이 떨어집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깨어진 창문이, 그리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갈라진 지붕이 시은소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은혜의 눈을 들어 보면, 깨어진 창문을 몸으로 막고 서 있는 시은소의 담임목사님과 교역자들이 보입니다. 갈라진 지붕을 가슴으로 가리고 엎드려 있는 시은소의 형제와 자매들이 보입니다. 그들은 그 아픔을 믿음으로 이기고 스스로 창문 되고 믿음으로 기왓장 되었습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위기의 건물 위기의 교회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믿음으로 지키려 애쓰는 향기 가득한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세상의 소망입니다 >

 

하나님은 이 깨어지고 갈라진 시은소를 향기 가득한 교회라고 하신다. 그들이 당신의 눈에 거룩하고 준비된 교회여서 가 아니라 그 부족하고 여윈 손을 당신에게 모으고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신다. 그 깨진 창문을 몸으로 막고, 그 갈라진 지붕을 지치고 상처투성이인 가슴으로 덮고 있기 때문이라 하신다. 비록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지만 그 깨지고 갈라진 틈을 믿음으로 견디며 세상의 용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긍휼히 여기심 만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신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당신의 뜻이라 하신다. 그것이 바로 진리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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