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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보시기에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총배덕 목사

2019.6.29

20196월 일터 예배

 

<열왕기하 22:2>

  •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북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 나누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상을 섬기는 곳으로 변해갑니다.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세워지는 왕들마다 계속해서 악을 행하는 악한 나라가 되어갑니다. 그리고 결국 북 이스라엘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맙니다.

 

남 유다의 요시야 왕의 즉위 시절, 그의 나이는 겨우 8세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삶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고 씌어 있습니다. 그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성전에서 말씀을 발견한 요시아 왕은 남 유다의 백성들이 그 동안 말씀을 지키며 살지 않은 것에 대하여 옷을 찢고 죄를 회개하며 남 유다를 온전히 세우고 돌이키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는 북 이스라엘과 같은 우상숭배의 악행들을 멈추고 돌이키는 개혁을 이루어 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돌이키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왕으로 인하여 온나라가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그 나라는 회복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개혁을 하는 요시야와 남 유다를 향한 진노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이 임하였을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회개하고 돌이키기 원하는 그 나라를 하나님께서 왜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개혁을 하든 회개를 하든 그렇지 아니하든 하나님의 진노가 돌이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훌다의 말을 듣고도 요시야는 계속해서 그 개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개혁의 노력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한다고 하는 예언자 훌다의 말을 듣고도 개혁을 멈추지 않은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전에도 후에도 요시야 왕과 같은 왕은 없었다 라고 쓰고 있습니다.

 

너무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지만 요시야는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요시야가 진정으로 두려워 하는 것은 남유다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진노가 멈추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들을 여전히 향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였기에 그는 피할 수 없는 진노 앞에서도 그 마음을 변하지 않고 회개와 개혁의 길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진노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요시야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얼마나 많은 신하들의 반대가 있었을까요?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저항이 있었을까요?

하지만 요시야는 진노를 피하는 돌이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신하들과 백성들의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 개혁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는 애굽 왕에게 결국 어이없는 죽임을 당하고, 그의 아들과 백성들은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가 멸망하는 시련을 훌다의 예언대로 겪게 됩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를 이쯤에서 한 번 들여다보겠습니다.

요시야의 그 종교 개혁이 없었더라면,

그 개혁이 무의미하다고 개혁을 멈추었더라면,

다니엘이 없었을 것이고

느헤미야도 없었을 것이며

에스더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예루살렘이 훼파 되어지고 남 유다가 무너지는 시련을 겪는다 할지라도,

라이 그 모든 것을 다 알고도 죽을 힘을 다해서 종교개혁을 해내려고 애썼던 요시야 왕의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지켜지고 보존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보이는 성전을 믿었던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전인 하나님을 믿었기에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이런 믿음을 이어갈 수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은 그냥 모인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오늘 우리는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깥에 있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면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여겨질까요?

사업이 그리고 삶이 형통으로 바뀐다고 생각할까요?

 

요시야 왕이 통치기간 중에 바라는 것들을 결국 이루어 내지 못한 실패한 왕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단단한 시온성의 중심을 지켜낸 믿음의 사람으로 보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것입니다.

이루지는 것이 무엇인가,

결과가 무엇인가 그런 시선으로 우리를 보는 사람들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크심이 우리와 다르고,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해되지 않아도,

당장 결과가 있지 않아도,

여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기 위하여,

우리가 여기 모인 것임을 확신하고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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