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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는 자 안에서
총배덕 목사
2019.10.26
2019년 10월 일터 예배
<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은 상대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자주 사용되어 지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형편에도 처할 줄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라고 말하는 바울이 그 다음이 이 성경의 말씀을 쓰셨기 때문에 이 말씀을 자기 개발적 사고 방향으로 해석하면 안된다는 의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아라 라고 말입니다.
해석은 다 다르게 주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제한하여서는 안됩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을 제한하고 우리의 생각대로 그 말씀을 운명론 적으로 풀어가는 것 만을 택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우리가 제한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알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자기 자신을 다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왜요? 우리 기억이, 그리고 우리 능력이 완전할 수 없으니까요.
뇌과학자들은 우리의 뇌가 착각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지의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가지 않아도 그 여행 기억을 뇌에 주입하면 실제 다녀온 것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가보지 않아도 그곳의 햇살과 바람을 느끼고 인지할 수 있다는 과학적 발표가 나오고 있습니다. 무서운 세상입니다. 우리의 기억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 라는 것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광야의 과정은 철저하게 우리를 단련하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온전히 알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 것, 우리에게 물질을 얻을 수 있도록 주신 능력 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 인 것을 우리가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 나를 본 자가 다 하나님을 본 것이다 “ 라고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을 주라 시인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일상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신앙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 나타내는 삶을 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는데 육신으로 마쳐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주시는 이, 곧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이루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울역에 가보면 많은 노숙자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능력에 의지하여 살았지만 성공하지 못한 삶 가운데 있는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 분들에게 자신을 붙잡던 손을 놓고 예수님의 손을 붙잡아 보라고 말씀드리자 그 분들은 자신에게 소망이 없음을 탄식하며 그저 소주 한 병 주기를 구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붙잡아야 합니까? 누구에게 나아가야 합니까? 무엇을 내려 놓아야 합니까?
바울이 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을까요?
그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중심으로 여기며 높이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들은 늘 성적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 성도가 몇 분이나 되시나요? “ 라는 질문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지요.
목회의 규모로 믿음과 능력을 판단하는 세상에서 목회자들은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능력을 갖추었지만 능력만 갖추었기에 소인으로 삶을 살 바에는 차라리 어리석은 사람이 되라고 말한 사마강이라는 사람의 말이 생각이 납니다.
능을 쫓는 삶, 이득을 쫓는 삶, 곧 소인의 삶을 살기보다는,
차라리 어리석은 사람(우인)으로 사는 것이
더 하나님이 다루시기 나은 삶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