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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안과 평안 >

일터예배 설교 (5.30.2020) 총배덕 목사

 

(사도행전 16:16~18)

16.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오늘 본문은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중 로마의 식민지이자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 루디아 집에 머무는 중에 바울은 실라와 함께 기도하는 곳에 가게 됩니다.

여기서기도하는 곳은 유대인의 회당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느 지역이든 10명이상 거주하게 되면 회당을 세웠습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 중 회당을 찾아가서 그 곳에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 곳으로 가는 중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여종이 여러 날 동안 바울과 일행을 따라 다니며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라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이 일로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였습니다.

그냥 괴로운 것이 아니라 심히 괴로워했습니다. 왜 괴로워했을까요? 보자마자 귀신을 쫓아내면 될 텐데..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 지역에 영적 영향력을 지닌 점치는 여종이었기에 여러 날을 고민 했을 겁니다. 그 여종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주인들이 있었고 당시 로마와 지중해 지역에 영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델포이 신탁의 상징이자 피손의 영에 사로잡힌 여종이기에 여러 고민을 했을 겁니다. 피손의 영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델포이 지역을 지배하였던 큰 뱀입니다. 원래 그 지역 명이 과거에 피손 이었는데 아폴론이 큰 뱀을 죽이고 델포이로 이름을 바꿨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 그 지역에 막대한 영적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여종이 바울 일행을 따라다니며 큰소리로 구원에 길을 전하는 자라고 사람들에게 전달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런 상황이라면 어땠을까요? 바울처럼 고민했을까요? 아니면 그 여종의 말을 듣고 많은 이들이 믿으러 나오니까 오히려 좋아했을까요?


아마도 우리는 효율과 이익을 들먹이며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된다라는 식의 주장을 펼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이 여종의 행위를 심히 괴로워했습니다. 비록 사람들이 몰려 나와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 부흥하고 성장한다고 해도, 본질이 변질 되면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숫자만 늘면 뭐 합니까? 제대로 믿을 사람들이 나오겠습니까? 오히려 그 여종의 영적 장악력과 영향력이 더 커 질 것이 뻔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그렇게 됩니다. 그럼 예수님의 자리에 그 귀신들린 여종이 앉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여종을 붙잡고 있는 귀신을 쫓아내면 그 주인들과 그 지역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 뿐만 아니라 이제 막 복음을 들은 이들을 가만 두겠습니까? 공격을 당할 것이 뻔합니다. 분명 바울은 자신이 당할 수치와 괴로움을 알았을 겁니다. 그러나 자신의 안위보다 빌립보 지역에 세워질 교회와 성도를 더 중요시 여겼습니다.


그래서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을 심히 괴롭히던 일이 해결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주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사라진 것을 알고 바울과 실라를 장터 관리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결국 무리의 고발로 인해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를 많이 때리고 깊은 옥에 가두게 됩니다. 그 발은 도망 못가게 차꼬에 채워집니다.

 차꼬란? 큰 나무 판에 구멍이 뚫려 있어 손이나 발을 채워서 도망 못가게 하는 장치입니다.

 정말 많이 불편했을 겁니다.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죽을 만큼 괴로웠을 겁니다. 매도 엄청 맞았기에 몸이 성한 곳이 없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 움직일 수도 없고 발에 차꼬를 차고 있으니 온 몸이 쑤시고 저려왔을 겁니다.


만약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는 어땠을까요? 원치 않는 이런 상황을 이해했을까요?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화복을 구하는 것인가요? 화는 피하고 복은 받고 싶은 건가요? 이 땅에서의 삶이 더 풍요롭고 싶어 예수를 따르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종교심은 있어도 믿음은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인생의 편안함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종교에 기댄다고들 합니다. 어느 종교는 고행을 통한 해탈을 갈구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당한 고통이 고행일까요? 보통 고행은 인간의 욕구를 끊어내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가 당한 일은 그냥 수치고 고통 자체입니다.

 왜 복음을 전하는데 그런 수치와 고통을 겪습니까? 왜 주님은 가만히 계실까요? 그리고 바울과 실라는 왜 주님께 따지지 않을까요? 우리는 이따금씩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구원 받을 만하거나 그런 행위를 했기에 구원 받았다고 여기는 거 같습니다. 구원을 보상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나 우리가 값을 치렀기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겁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결코 우리가 구원 받을만해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믿는 자들이 이와 같은 내용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내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복음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믿음은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원하고 바라는 것이 아닌 흔들리지 않는 평안으로 가득 찬 마음입니다.   

25절에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한밤중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만큼 그 시간이 고통의 시간이고 괴로운 시간이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조차 보이지 않는 막막함, 신음과 죽음의 공포의 소리만 가득 찬 한밤중, 그 적막을 깨고 바울과 실라는 기도와 하나님을 향한 찬송을 부릅니다. 그러자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고 메인 것이 다 벗어집니다. 기도와 찬송은 닫혀 있는 문과 메인 것을 열고 푸는 열쇠입니다.


 이어서 말씀에는 간수가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알고 자결하려고 합니다. 당시에 죄수가 감옥을 탈옥하면 간수가 대신 형벌을 받아야했기에 자결을 선택하였지만,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멈추게 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서 데리고 나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31절과 32절에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의 온 가족이 다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날이 새고 아침이 되자 간수의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를 풀어주어 평안히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않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그냥 보내냐며 따집니다. 그 곳은 로마의 식민지입니다. 그리고 당시에 법으로 로마 시민은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죄가 정해지기 전에 형벌을 가하거나 대중 앞에서 모욕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단지 유대인인줄알고 확인도 하지않고 우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바울과 실라가 먼저 밝혔어야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럴 겨를도 없이 옷이 찢기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던 것입니다


그럼 이제 와서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려고 로마시민임을 밝힌 걸까요? 아니면 복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전파를 위해 자신들의 신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자신을 지키기 보다 그 지역에 세워질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사용할 뿐이었습니다. 그냥 그들이 조용히 풀려난다면 그들을 고소한 이들의 주장처럼 잘못된 풍습을 전하는 것으로 치부되기에 자신들에게 있는 신분을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온전히 사용한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무엇이 중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16장 말씀을 통해 바울의 선교 여행중 빌립보 지역에 구원 받은 두 가정이 기록 되었습니다. 분명 바울과 실라는 로마의 시민권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안위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편안한 길보다 평안한 길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비록 몸이 아프고 괴로울지라도 편안한 길이 아닌 평안한 길을 따른 바울과 실라를 통해 빌립보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 복음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일반 종교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 편안을 갈구합니다. 비단 종교만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으로 모두 편안을 구합니다. 편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평안이 넘치면 몸이 환경이 불편한 것쯤이야 감수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을 생각해 보세요. 잠시 일상에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편하게 쉬고 싶어 여행을 가지 않나요? 그 과정은 결코 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여행을 통한 힐링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힐링을 얻고자 오고가는 길에 불편함과 피곤함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듯 우리의 신앙도 편안함을 원하고 바랄 것이 아니라 평안을 진정 원하고 바래야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좋은 주말 일터예배에 나오는 불편함, 주일 예배를 섬기기위한 여러 가지 봉사와 예배 참여의 불편함을 기뻐하는 평안함,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들어내는 것이 불편할 수 있지만 기꺼이 그 불편을 감내할 수 있는 담대함, 그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예수님이 주신 평안함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원수는 우리에게서 편안함을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평안은 뺐을 수 없습니다. 늘 말씀과 기도와 찬송의 삶을 통해 평안을 누리시는 일터지기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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