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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chable

 

                                                                                                           2020.6월 일터예배

                                                                                     총배덕 목사

 

(사도행전 18 24 ~ 28)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teachable이라는 단어로 제목을 정해봤습니다.

의미는 '가르칠 수 있는, 잘 배우는' 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입니다.

가르치다는 표현과 배우다는 표현을 같은 의미로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아볼로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유대인입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대도서관이 있었고 당시 로마의 모든 지식이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언변에 능통하다는 말 자체가 teachable 하다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신학자들이 이야기를 합니다.

 

아볼로는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일뿐만 아니라 잘 배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사람이 왜? 예배소에 와서 무엇을 했느냐? 하면 그곳 회당에서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예수님의 관한 복음을 전하는데..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 라는 부분까지는 모르는거예요. 단지 예수님이라는 분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 라는 것 까지만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회당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한 것이죠 마치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듯이 아볼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에베소에 와서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치는 장면이 기록되어진 것입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부르스길라와 아굴라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브르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과 생업이 같다고 나옵니다. 바울과 함께 동행한 것으로 나옵니다. 에베소지역에서 1 6개월동안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2차 전도여행때 이야기죠. 사도행전 18 24-28절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이 시작된 바로 직전 기록이고 과정입니다.

 

브르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만나요 아볼로는 나중에 고린도전서에서 기록되어져있고 고린도교회의 중요한 지도자가 됩니다. 그런데 그가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었는데.. 누구에게 영향을 받느냐? 바울에게 영향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브르스길라와 아굴라에게 하나님의 도에 대해서 정확하게 양육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볼로가 아가야라는 지역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어요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아볼로를 영접하라 그리고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많은 유익을 주었다고 합니다. 성경으로서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언하여

공증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겼다라고 합니다.

 

바울의 1 2차 전도여행 할 때 늘 부딪쳤던 것이 유대인이었어요.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유대인들이 대적하고 나선거예요.

그 대적을 통해서 바울이 회당을 피해서 옆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거나 가르치거나..

그 회당을 벗어나서 두란노서원이라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거나 가르치거나 ..

그런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바울이 전한 복음에 논쟁을 하고 훼방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돌에 맞아서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버렸는데... 그 성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늘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부딪침이 있었고 바울이 힘이 없어서 공중 앞에서 유대인들에게 아볼로처럼 그 말을 이기지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아볼로라는 인물을 하나님이 세우시고 그 유대인들의 말을 이겼다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은혜입니다.

 

바울의 사역이 있고. 브르스길라와 아굴라의 사역이 있었고, 아볼로의 사역이 있었고..

바울을 통해서 브르스길라와 아굴라가 양육을 받았고. 말씀으로 든든하게 세워졌습니다.

브르스길라와 아굴라가 누구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까? 아볼로에게 전한 것입니다.

바울을 통해서 전해진 복음이 브르스길라와 아굴라를 거쳐서 아볼로에게 간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정말 놀라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브르스길라와 아굴라는 사실 아볼로에게 비해서는 학문적으로나 철학과 신학 모든 부분이 어쩌면 떨어질 수도 있어요. 오늘날로 보면 바울은 목회자라고 볼 수 있고

브르스길라와 아굴라는 성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고린도교회 지도자인 아볼로를 양육한 것은 바울이 아니라 브르스길라와 아굴라 라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 시점에서 이야기하자면 브르스길라와 아굴라는 평신도이자 일터사역자입니다. 하나님의 도를 가르쳤던 일터사역자입니다.

 

바울과 생업이 같았던 브르스길라와 아굴라. 생업이 같았다 라는 것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생업이 같았다는 것은 그들이 천막을 만드는 일에 하나가 되었고 1 6개월 동안 함께하며 브르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도에 대해 철저하게 양육을 잘 받았습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훈련을 잘 받았던지 언변이 뛰어난 아볼로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볼로는 사실 유대인들이 천하게 여긴 직업을 가지고 있는 브르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서 복음을 들은 것입니다.

 

바울에게 천막 깃는 일은 생업이었습니다. 신학자들의 이야기로는 로마의 입장에서 보면 바울은 로마의 군수물품을 대주는 사업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깃는 천막은 누가 가장 많이 사용했을까요? 사실 유대인들이 천막을 더 많이 사용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로마의 군인들이 식민지를 확보하며 전쟁을 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했던 것이 천막입니다. 오늘날 천막 같은 재질이 아닙니다. 천이 아닌 동물의 가죽으로 천막을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고 바리새인중에 바리새인이라고 바울은 고백했어요. 그런데 왜 유대인들에게 거부를 당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생업 때문입니다.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이 봤을 때 율법의 기준으로 바울이 천막 깃는 일을 한다는 것은 죽은 사체를 만져야 하는 직업입니다. 즉 염소 가죽을 가지고 천막을 만들어야 하기에 천하게 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가 아무리 바리새인중에 바리새인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아무리 힘 있게 말한다고 해도 유대인들의 시각에는 그저 부정한 일을 하는 자라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브르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난 겁니다.  바울과 같은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로마에선 중요한 직업이지만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어쩌면 군수산업이자 로마를 위해 일하는 것이고 신앙적 입장 율법적 입장에서 보면 바울과 브르스길라와 아굴라는 사실상 유대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에베소 지역에서 1년 반 동안 바울이 애쓰고 천막을 만드는 이유는 ... 어떻게 하면 복음을 더 잘 전할지..  전도여행을 훌륭하게 감당해 나가기 위해 생업을 유지해나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 그 모든 것들을 우리가 감당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주신 일.. 그 일을 사명으로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직업에 대한 소명이 있어야 하고 직업을 주신 소명으로만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있고. 그 사명으로 직업을 우리가 훌륭히 감당해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분명 우리에게 맡겨주신 직업을 터부시하지 않습니다.

왜 한국교회에서만 터부시할까요?
그것은 유교의 영향이기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나에게 주신 일을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소명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바울도 브르스길라와 아굴라도 생업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교회 중심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나라 중심이 되지 않으면 우리 삶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 중심으로 살아갈 때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극복하고 이겨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과 브르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렇게 살다 아볼로를 만났고. 그 아볼로를 브르스길라와 아굴라가 하나님의 도에 대해 양육을 합니다. 아볼로는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히 배운 다음 바로 아가야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부르신 소명을 가지고 사명으로서 우리 삶을 살아간다면 복음은 열매를 맺을 것이고 하나님나라는 지속적으로 확장되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을까요? 아니죠. 문제가 생깁니다. 복음은 환영 보다는 대부분 거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믿는 자들을 배척하고 거부합니다. 우리를 거부하고 대적하는 이들과 싸우는 자가 아니라 바울의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의 가치관을 세우고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쳤던 아볼로 ,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아볼로와 바울을 비교합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안에 여러 가지 논쟁이 생깁니다.

 

나는 아볼라파 나는 베드로파 ....

 

파벌이 나눠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하면서..어떻게 했습니까?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하고 예언을 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우리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전한 것은 사랑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고 스펙이 뛰어나도 정말 우리 안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여기서 사랑은 헬라어로 아가페입니다. 히브리어로는 헤세드라고 합니다. 헤세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헤세드 단어를 인칭 대명사로 바꾸면 하시드가 됩니다. 헤세드가 있는 사람을 하시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더 나은 사람처럼 비춰지기 위해서 내가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힘을 쓰고 있는지?...  하나님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내가 열정과 사랑으로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나은 사람이야 내가 좋은 사람이야 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정말 나를 불사르고 있는지 우리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적 신앙에서 벗어나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중심적 신앙에서 벗어나서 십자가 중심 예수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는 것이고 내가 아닌 예수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였습니다. 본받으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아볼로도 따르지말고 베드로도 따르지말고 바울만 따르라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도를 전한 것이지...바울의 도를 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자신을 본 받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부분에서 놀라운 장면이 있습니다. 

브르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잠깐 만난 그 사이에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서 알려줬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풀어서... 아볼로도 나름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브르스길라와 아굴라가 더 정확하게 풀어서 알려줬습니다. 이 부분에 우리가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에 대해서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필요한 부분만 늘 취하는 자인지? 내가 원하는 부분만, 나를 위로해주는 말씀, 나에게 힘을 주는 말씀만 부여잡고 있는지? 늘 하나님의 도를 묵상하고 그 말씀을 지켜서 살아내고자 열심히 애쓰는 핫시드 그리스도인인지... 우리를 돌아봐야 될 것입니다.

 

무엇으로 우리를 평가할 수 있을까요? 평가라는 말이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열매로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아볼로 이야기를 마치면서 사도행전 19장이 이어집니다. 다시 바울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십니다.  바울이 입고 있던 앞치마 바울이 땀을 닦았던 손수건... 그것을 가지고 가서 병든 자에게 악귀 들린 자에게 얹으면 악귀가 떠나가고 질병이 나았습니다.

 

우리는 귀신이 쫓겨나갔다 병이 나았다 라는 것에만 초첨이 맞춰집니다. 우리는 항상 능력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바울이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땀을 닦은 손수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시점에.. 바울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바울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고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그것을 가져다가 병든 자에게 악귀들린 자에게 얹었을 때 그 병이 떠나고 악귀가 떠나갔다고 19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소명을 지켜나갔습니다. 땀 흘려 일하고 있었고 그 천막을 깃기 위해 앞치마를 두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소중이 여기거나 소명으로 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것은 사랑으로 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내가 서있는 자리 나에게 맡겨주신 그 일을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땀흘려 일할 때 우리 손에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우리가 섬기는 교회에서 능력을 행하게 하십니다.

 

거기서 주술을 하고 있었던 양다리 신앙의 유대인들이 바울 앞에 나와.. 자기들의 잘못된 신앙에 대해 자복하고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에베소지역이 변화가 일어납니다. 주술 책을 가져다가 불에 태웁니다. 그 양이 엄청납니다.  엄청난 양의 주술책이 태워집니다. 도시가 변화되어지고 갱생이 됩니다. 회개운동이 일어나고 소동이 일어납니다. 난리가 납니다. 

그게 19장의 기록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있는 곳은.. 교회만 늘 새로워지고 교회만 잘 되고 교회만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도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고, 더 정확하게 배웠다면 우리 가정이 회복되어지고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가 회복되어지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그 지역이, 일터가 변화되어지고.. 회복되어 집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늘 소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부정적소동인가요?

긍정적 소동입니다. 도시가 바뀌는 것입니다.

개인만이 아니라 개인과 도시가 바뀌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능력인가요? 

우리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하면 우리를 보내신 그 곳에서 우리가 수고하고 땀 흘리고 있다고 하면 우리 손에 놀라운 능력을 주셔서 그 일을 이루게 하실 줄 믿습니다. 

 

바울, 브르스길라와 아굴라, 아볼로,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와 같은 삶을 이어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도를 이어가는 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알아야 됩니다. 

아볼로처럼 teachable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브르스길라와 아굴라도 , 바울도, 아볼로도 teachable한 사람이었습니다. ...

단순히 가르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잘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 teachable.

우리모두 teachable한 사람이 되어서.. 주의 도를 더 정확하게 배워서 가르칠 수 있고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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