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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7) – 이 담대한 죄인을 용서 하소서

 

                                                                                                                                    

(마가복음 5:1~8)

  •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를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귀신들린 거라사 광인은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지만 정작 그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귀신들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멀리서 예수님을 즉각 알아보았고 달려와 절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마치 광인이 돌로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들 또한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망가뜨리는 세상의 것들을 마구 취하면서도 그것이 우리들의 몸과 영혼을 상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니 거라사 광인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본질적으로 더 나쁜 삶을 살아가고 있지요. 광인은 예수님을 즉각 알아보고 엎드려 항복했지만 우리는 매 순간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살아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임재를 일상의 삶에서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뿐 아니라, 수도 없이 짓는 죄를 주님께 엎드려 자비를 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어떤 옳지 않은 생각을 하고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죄를 짓는 다는 마음이 들지요?

    그것은 우리가 죄를 인지 한다는 것이고,

    죄를 자각하게 만드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니,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는 성령님과 만나고 있는 것이 증명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계속해서 짓습니다. 이 얼마나 담대한 일입니까?

    성령님께서 우리의 죄를 보게 만드시고,

    당신께서 직접 우리가 짓고 있는 죄를 보고 계신다고 말씀 하시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죄를 계속해서 지으니까요.

    회개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어디까지 언제까지 우리를 참으시는 것일까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마태복음 18:22)]

     

    70번씩 7번 용서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말씀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이 490번의 용서가 터무니 없이 많은 숫자라 여겼는데 오늘 묵상 중에 제 마음에 주신 음성은 이 숫자가 우리에게는 터무니 없이 작은 숫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오늘만 해도 몇 번이나 죄를 지었을까요? 최소한 10번은 지었겠지요?

    한 달만 지나도 300번이 되고 일년이면 365십번의 죄를 짓는 것이 되고

    80년을 산다면 30만번 이상을 죄를 짓는 것이 되니,

    성령님께서는 그런 저를 30만번 이상 용서해 주시는 것이 됩니다.

    그런 저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평생 단 490번만 용서하라 하신 것이지요.

    그러니 그 490번이라는 용서의 숫자가 얼마나 터무니 없이 작은 숫자인가요?

     

    그런 우리가 그 수많은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 조차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성령 하나님을 매순간 만나고 은혜를 누릴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죄를 짓는 우리의 성정은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죄도 지을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런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수백번, 수천번 아니 수십만번이라도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 담대한 죄인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영원히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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