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mission

Daily QT

댓글 0 조회 수 456 추천 수 0
?

단축키

이전 문서

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이전 문서

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2019(45) – 믿음은 이해되지 않을 때 필요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6:7~8)

  •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못하더라

 

 

예수님은 생전에 제자들과 여인들에게 당신께서 죽임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셨고 다시 살아나실 것을 또한 말씀하셨는데 여인들과 제자들은 그것을 기억해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천사의 말에 두려워 떨며 제자들에게 그 말을 전하지 못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하여 묵상하는데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제게 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셨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믿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죽은 자가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구요. 믿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해도 하지 못한 그 일을 그녀들이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두렵고 무섭기만 합니다.

 

이렇게 한 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 곧 죽임을 당하실 것과 다시 살아나실 것을 비록 이해는 할 수는 없었지만 믿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입니다.

 

자신들의 지식과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내용들이었지만 이미 초자연적인 기적과 표적을 수도 없이 행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행적으로 보아서 이해할 수는 없지만 믿으려고 할 수는 있었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마음 속에 새기며 들었을 수는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랬다면 오늘 이 천사가 하는 말을 지금과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무서워 떨며 아무에게 이야기도 못하는 그런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저의 삶에 이 상황을 한 번 적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믿음 생활을 하면서 기도 중에, 말씀 중에, 설교를 듣는 중에, 찬양하는 중에 저는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리는 것들을 많이 듣는 체험합니다. 다른 믿음의 자녀들 또한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음성들 대부분은 당시 상황으로 바라보았을 때 이해되지 않는 말씀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잘 믿어지지 않겠지요? 우리의 경험과 지식으로 바라보았을 때 이해되지 않으니,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당시 제자들이 그리고 여인들이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는 그리고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이해할 수 없었고, 또 이해 할 수 없어서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것과 동일한 이유로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고 말씀하신대로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신대로 이루어 진 것이지요. 이해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초자연적인 일이었기에 이해될 수 없는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이해가 아니라 믿음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우리에게도 동일한 적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말씀을 읽는 중에, 설교를 듣는 중에, 그리고 찬양하는 중에 우리의 심령에 말씀하시고 마음의 눈으로 듣게 되는 말씀들은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 말씀들은 믿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은 아래와 같은 찬양으로 제게 말씀하십니다.

 

주위를 둘러 보면 아무도 없는 듯 ( 육신의 눈을 들어 세상을 둘러 보면 예수님, 그분은 안 계신 듯 하지만)

믿음의 눈을 들면 보이는 분 계시네 (이해되지 않는 마음을 돌이켜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분이 보일 겁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역사하고 계시는 (그분은 21세기를 사는 삶에서도 그 때와 동일하게 살아 계시는 분입니다)

사망과 어둠의 권세 물리치신 예수님 ( 십자가에서 그렇게 사망과 어둠을 물리친 것처럼, 지금도 동일하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다고 해서 안 계신 것이 아닙니다.

이해되지 않을 때

보이지 않을 때

바로 그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9:23)

 

오늘 하루,

이해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이 보이지 않을 때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음의 눈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그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아멘,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24 2019(61) – 철저한 회개와 돌이킴이 복의 통로입니다   바울 2019.05.22 612
2123 2019(60) – 형통이라는 이름의 위기   바울 2019.05.21 616
2122 2019(59) – 철저한 회개와 돌이킴이 죄의 값이다   바울 2019.05.20 596
2121 2019(58) – 모새의 시선, 예수님의 시선   바울 2019.05.17 605
2120 2019(57) – 남겨진 십자가를 지라고 안수하신 하나님   바울 2019.05.14 572
2119 2019(56) – 콘테이너박스 묵상   바울 2019.05.11 600
2118 2019(55) – 거름이 되게 해 주세요   바울 2019.05.10 568
2117 2019(54) –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는 자의 삶   바울 2019.05.09 572
2116 2019(53) –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바울 2019.05.09 569
2115 2019(52) – 누가 크냐? 역할과 크기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라   바울 2019.05.06 567
2114 2019(51) – 그러나 나는, 나만은, 나는   바울 2019.05.04 534
2113 2019(50) – 듣는 자, 들은 대로 행하는 자가 영적 지휘관입니다   바울 2019.05.04 513
2112 2019(49) – 시계와 같은 이 땅의 하나님 나라   바울 2019.05.02 480
2111 2019(48) – 먼저 찬양할 때 내 삶은 놀라움이 된다   바울 2019.04.25 499
2110 2019(47) – 기다림, 붙잡음, 그리고 해피엔딩   바울 2019.04.24 452
2109 2019(46) – 믿게 되는 것 vs 믿으려 하는 것   바울 2019.04.23 474
» 2019(45) – 믿음은 이해되지 않을 때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 2019.04.22 456
2107 2019(44) –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바울 2019.04.20 420
2106 2019(43) – 우리 모두는 양이면서 목자다   바울 2019.04.18 443
2105 2019(42) – 그릇된 능력, 올바른 동기   바울 2019.04.16 433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09 Next ›
/ 109
Designed by hikaru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