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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6) – 콘테이너박스 묵상

 

                                                                                                                                    

(민수기 3:14~26)

  •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레위 자손을 그들의 조상의 가문과 종족을 따라 계수하되 일개월 이상된 남자를 다 계수하라
  •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그 명령하신 대로 계수 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모세에게 임하고 모세는 자신의 뿌리인 고핫 자손들을 포함한 게르손과 므라리 레위 숫자를 1개월 이상 된 아들들로 계수했고 그 숫자는 7500명이었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이 속한 고핫 자손들에게 성소의 물건을 돌보는 귀한 역할을 주셨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을 다 사랑하시지만

마음의 중심을 담아 섬기는 이들을 당신 가까이 두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는 아침이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가?

나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인가? 에 대하여 묵상했다.

 

묵상하는데 하나님은 콘테이너박스로 만든 사무실이 눈에 들어오게 하신다. 아직은 본격적인 더위가 아니지만 여름이 되면 이런 콘테이너 사무실은 찜통 그 자체가 된다. 바람이 들어오고 나갈 방법이 없고 콘테이너 자체가 열을 흡수하고 내보내지 않는 두꺼운 철판으로 만든 것이니까 그렇다. 반대로 겨울은 당연히 아주 추운 곳이 된다. 그러니 아무도 그 안에서 머무르거나 일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강력한 에어컨이나 히터가 있다면 모를까.

 

묵상이 오래 전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과 오버랩이 된다. 당시 이스라엘의 광야는 낮에는 아주 무덥고 밤에는 아주 추운 곳이었다. 그래서 낮에는 천막을 쳐서 해를 가리고 바람이 통하도록 사면을 열어 둔 채로 생활을 했을 것이며 밤에는 사면을 다 막아 찬 기운이 스며들지 않도록 했을 것이고 보온을 위해서 동물 가죽 옷을 입으며 추위를 견뎠을 것이다.

 

물론 성경에 씌어 있기를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백성들을 추위와 더위로부터 보호하셨다고 하셨으니 상황은 위에 쓴 것보다는 훨씬 더 나았으리라 예상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광야에서의 삶은 참으로 힘들고 고단했으리라.

 

예전에 이스라엘 아웃리치를 갔을 때 예루살렘에서 이집트까지 그 광야길을 버스로 되짚어 가 본적이 있다. 걸어서 간 것도 아니고 버스를 타고 갔는데 아마도 10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난 거의 기절한 상태로 잠만 자며 갔던 터라 버스 안에서의 10시간을 고통으로 기억하지는 않지만 같이 갔던 다른 형제와 자매들의 말로는 엄청나게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길을 걸어서 그것도 40년이라는 시간 동안을 통해 지나갔다고 한 번 생각해 보자. 이 얼마나 힘든 삶인가?

 

그 당시 화장실에 가려고 잠깐 광야 한가운데서 내린 적이 있었다. 그건 기억이 난다. 주변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제대로 없는 척박하기 그지 없는 땅이었고 우린 단 5분도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다. 당시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런 곳에서 무려 2백만명의 사람들과 그 숫자보다 훨씬 더 많았을 소와 양 같은 가축들이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거기서 즉시로 굶어 죽거나 갈해서 죽었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 있던 그들이 40년 후에 무사히 가나안 땅으로 살아서 들어간 것 자체가 홍해를 가른 기적, 이집트에 내린 10가지 기적, 요단강을 세워 놓으신 기적,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기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닌가?

 

그 당시에 버스를 타고 가던 중에 성경에서 말하던 구름기둥을 보았다. 그곳은 너무나도 뜨거운 곳이었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기 때문에 버스 안은 에어컨을 최대한으로 가동한 상태에서도 매우 더웠었는데 갑자기 버스가 시원해 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지? 그리고는 다시 버스가 더워 졌다. 방금 지나온 길을 뒤 돌아 보았는데 놀라운 광경이 거기 있었다. 큰 구름이 하늘 위에 떠 있었고 바람 한 점 없이 뜨거운 공기가 정체되어 있는 곳 아래로 그늘이 펼쳐져 있는데 그 모습이 정말 아주 커다란 구름기둥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한낮의 살인더위를 구름 기둥으로 지키셨다는 것이 실감이 나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제 콘테이너 사무실을 보게 하시고 묵상하게 하신 부분으로 되돌아가 보자.

 

레위인들이 섬긴 장막, 특별히 하나님께서 은총이라고 말씀하신 고핫 자손들의 책임인 물건들이 있는 성소는 사방이 막힌 천막이요 천막 바깥 쪽은 다시 천을 내려뜨려서 바람을 이중으로 막고 있는 구조가 아닌가? 에어컨도 없는 성소 안. 창문도 없고 바람 한 점 들어올 수 없는 곳 성소, 이곳이 정말로 은총의 자리인가? 밤은 또 어떤가? 짐승가죽으로 만든 두꺼운 옷을 입고 드나들 수도 없는 성소에서 섬기는 밤시간은 또 얼마나 춥고 고단한 곳일까? 이런 곳에서 근무하는 고핫 자손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들이 맞기는 한 것인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시원하게 해 주시고, 사방으로 천막을 열어 그래도 바람이 드나들며, 밤에는 불기둥의 열기와 두꺼운 옷과 침낭으로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처소에 머무는 것이 훨씬 더 큰 은총이 아닌가?

 

물론 이 모든 것이 나의 짧은 지식과 묵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당시의 실제 상황도 내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여겨졌던 것일까?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단 한지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To be near) 내게 복이라 (Good) (시편 73:28) “

 

그들은 물리적으로 그리고 삶에서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삶이었다. 비록 낮에는 지극히 덥고 밤에는 춥기 그지 없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였기에 은혜와 은총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 때의 상황을 지금 21세기 우리의 삶으로 가져와서 생각해 본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과 거리가 먼 세상에서 훨씬 더 쾌적한 삶, 혼과 육이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고 또 선택할 수 있다.

 

추운 겨울 죽기보다 싫은 침대 밖으로 나와서 옷을 겹쳐 입고 새벽공기를 가르고 새벽예배에 가는 것보다 따뜻한 침대 안에서 78시까지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으며, 금요일 밤 8시에 철야예배에 가는 것보다 그 시간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며 밤 11시까지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주일 아침과 낮시간에 교회에 가서 봉사하고 예배 드리기 보다 피크닉 준비를 해서 사랑하는 가족들, 좋아하는 동호회 사람들과 산으로 들로 나가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새벽예배에 가는 시간이 더욱 그립다. 거기서 머물며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더욱 행복하다 여긴다. 금요일에 술집에 앉아 있는 것보다 찬양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며 밤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욱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산으로 들로 나가서 신록을 마음껏 누리는 것보다, 컴컴하고 좁은 실내에서 아이들 예배 뒷치닥거리를 하거나, 예배 온 사람들을 섬기거나, 예배 당 안에서 찬양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보내는 시간이 더욱 행복하고 기쁘다.

 

왜 그런 것일까?

수천 년 전 고핫 자손들이 은총이라 여긴 시간들이, 21세기의 신앙인들의 마음과 무엇이 다를까? 아마도 동일한 것이리라. 그 이유는 오직 한가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 그거 하나다.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키(Key)가 하나씩 들어있다.

태어날 때부터 숨겨져 있는 키다.

 

이 키는 세상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움직임이 사라진다.

이 키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움직임이 커진다.

이 키는 예배의 자리로 헌신의 자리로 사랑의 자리로 다가가면 갈수록 그 움직임은 더욱 강력해 진다.

그러다 결국 수면 위로 올라와서는 우리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제 그 키를 집어 든다.

내 손에 들려진 그 키는 십자가 앞으로 나를 이끌어 간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십자가로 나를 이끌어간 그 키는, 스스로 십자가에 꽃히고 스스로 돌려서

십자가의 문을 열어젖힌다.

하나님이 나를 맞이하신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To be near) 내게 복이라 (Good) (시편 73:28) “

 

오늘 하루, 매순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내 안에 선물로 받은 키를 보는 은혜를 주세요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그 키가 저의 삶을 십자가 앞으로 이끌어 하나님을 가까이 만나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겠습니다. 비록 그 자리가 춥고 어둡고 덥고 습한 곳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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