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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17)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결코 우연일 수 없는 이 믿음의 계보에 대해 묵상합니다.
다윗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이 없었더라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을까요?
뱀 때문에 그리고 타락한 아담 때문에
우리에게 죄가 잉태되었고 온 인류는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뱀이 없었다면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우리는 여전히 에덴에서 살고 있을까요?
나는 죄를 잉태하는 뿌리일까요, 생명을 자라게 하는 나무일까요?
하나님께서 제 안에 주시는 마음은 두 나무가 동시에 제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느 나무에 물을 주는가에 따라
생명나무가 자랄 수도 있고, 죽음의 나무가 자랄 수도 있다하십니다.
잎사귀만 보아서는 모릅니다.
그러면… 잎사귀를 낸 줄기를 보면 알 수 있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줄기를 낸 나무를 보면 알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나무의 뿌리를 보지 않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 잎사귀가 그 줄기가 그 나무가 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생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요.
오늘 “ 계보 “ 에 대해 묵상하면서 제 안에 있는 두 그루의 나무에 대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눈에 보이는 나무, 줄기, 잎으로는 그 나무가 생명나무인지 죄의 나무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즉 제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는 것만으로는 제가 어떤 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거지요. 결국 뿌리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아야만 올바른 나무에 물을 붓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잎사귀가 아무리 무성하고 푸르러도
눈에 보이는 줄기와 나무가 아무리 멋드러지게 뻗어 있다해도
뿌리가 죄로 물들어 있다면 그 나무에서 틔울 잎사귀는 죄와 사망의 결과물일 뿐이니까요.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두 나무의 뿌리를 어떻게 하면 구별해 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어떤 생각,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떤 말과 행동을 할 때,
그 시작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모든 움직임의 시작점이 불순한 목적과 유익을 향한 것이었다면 뿌리가 죄입니다.
하지만 조작에 의해 결과물이 더럽혀 지고 오해로 인해 위기 가운데 놓인다 해도
그 시작점이 선한 것이었다면 그 뿌리는 생명인 것이지요.
뿌리를 알고자 애쓰는 것,
영적 훈련의 시작입니다.
오늘 하루, 매순간 어떤 생각과 결정과 말을 그리고 행동을 할 때 그 생각, 그 결정, 그 말, 그 행동의 시작점이 어떤 뿌리에서 시작되었는지 예민하게 생각하고 행동에 옮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