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마태복음 3:1~10)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 라고 외치던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는 “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 라고 말합니다.
왜 요한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는 회개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묵상하는 제게 어젯밤에 있었던 작은 일 하나와 그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이 들려옵니다.
2020년 3월 이후로 시간이 멈추어 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늘 길을 오가며 삶을 움직이던 사람들,
삼삼오오 모인 곳에서 동력을 얻던 사람들,
뜨거운 입김을 들이마시고 땀을 흘리며 행복했던 이들,
코로나로 멈춘 세상은 그들의 심장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자정처럼 캄캄한 상가들을 지나며
9시를 가리키는 시계 바늘이 믿기지 않는 안타까운 겨울 밤은
눈물이 되고 절망이 되었습니다.
아직 불이 켜져 있던 작은 카페가 반가워 문을 열고 들어선 제 눈이
주인 아주머니의 한숨과 마주쳤습니다.
오늘 따라 유난히 더 뜨거운 아메리카노 두 잔을 건네던 그녀의 눈 빛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건네 주던 쿠키 하나....
" 괜찮아요 "
" 단골이시잖아요^^"
오늘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걱정하지 않고 이 맛있는 다쿠와즈를 먹을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들의 아픔이 제 아픔이 되는 것에 또한 감사했습니다.
기도가 필요한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함께 있음을 전해야 할 분들 진짜 많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에 제 진심이 담기게 하신 하나님이 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이렇게 그 분들을 위로 합니다.
" 아직 이지만....그래도 잘 해내고 계시잖아요? "
바리새인들에게는, 사두개인들에게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아픔을 이용하고 그들의 위기를 자신의 유익으로 이용하려는 악한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세례 요한은 외칩니다.
“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그 바리새인이라고 해도
내가 그 사두개인이라고 해도
내 안에 긍휼의 마음이 돌아오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즉시 구원이라는 손을 우리에게 내미실 것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할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어떤 죄도 어떤 무례도 어떤 멸시도 사랑을 이길 수 없음을 고백하며 매 순을 사는 제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