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예배 제 2기 - 혁명 (2020.2.29 - 총배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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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울 작성일 20-03-03 08:43 조회 3,101 댓글 0본문
혁명
총배덕 목사
2020.2.29
2020년 2월 일터 예배
<마태복음 27장 38절>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바리새인과 기대함이 있었습니다. 메시아는 이런 분일거야 라는 나름의 추론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활동하
시자 여론이 형성이 되어서 추종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당시에 그들이 바라던 구원의 모습은 로마를 몰
아내고 굳건한 다윗의 왕국을 회복해서 세우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다 알 듯이 예수님은 오셔서 제자들에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자신이 잡힐 것이고 그리고 죽을 것이고 부활하실 것에 대해서 여러 차례 이야기했는데..
제자들의 귀에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그들의 기대와 예수님은 다르게 움직이셨습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자들의 기대는 굉장히 커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27장 38절 말씀에 보니까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사실이라는 것을 기록하고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강도들이 달렸
다는 구체적 기록을 통해서...
우리가 이점에 대해 생각을 한번 해보아야합니다.
각 역사에서 혁명을 일으키다 실패했을 경우...수장만 죽던가요?
난을 일으켰던 수장만 참수를 당하던가요?
그렇지 않고 따르던 추종자들까지 같이 제거가 되지 않던가요?
그게 인간 역사의 흐름이지 않던가요? .
참 희한한 건 제자 중 그 누구도 함께 십자가에 달리지 않고, 함께 고문당하지 않았으며
함께 채찍 맞지 않고, 오직 예수님 한분만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
왜 예수님은 따르던 추종자들이 아닌 당시에 십자가에서 죽을 수밖에 없던 강도들과 같이 달리셨을까요?
그래서 세상은 예수님을 실패한 혁명가로 기억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기대와는 다른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
예수님은 철저히 우리를 위해 희생양이 되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그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고 우리의 모든 허물을 짊어지고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책
임지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하물며 실패까지도 ...세상은 그래서 예수님을 실패한 혁명가로 기
억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관점에서 33살의 젊은 청년 예수의 혁명은 실패하였지만 오늘날 그 예수의
십자가는 각 나라와 족속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만큼 예수님에 대해 듣고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렇게 열심히 예수를 추종하며 따르던.. 예수님과 죽겠다고 각오를 하던 그 제자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요?
마가복음 10:32-45 말씀에 보니까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라고 자신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런데 그 전 사건이... 부자청년이 찾아온 사건입니다. 낙타와 바늘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고 그 이후에 제
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분명 따르는 무리들로 인해 제자들 안에 동요
되는 마음을 보신거 같아요. 자신이 어떤 길을 가는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35절부터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따르는 12 제자들 보다 앞서서 야고보와 요한이 묻습니다. 원하는 바를 들어달라고 하죠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그들이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
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 열 제자가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러니까. 어쩌면 제자들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그 길에서 환영하는 무리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걸 보자 마자 제자들 안에 어떤 마음이 있었을까요?
그 영광을 받고 있는 그 좌우에 서고 싶었을 겁니다.
이제 혁명이 시작된 줄 알았던 거죠 그것이 그들의 기대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바람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가요?
우리가 예수를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정말 자기중심적인 신앙에 빠져있는 것을 너무 많이 봅니다.
특히 위기가 왔을 때 더욱 잘 드러나는 거 같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수님을 빙자하여 우리가 높아지려고 한 것은 아닌지..
자기 생각으로 가득차서 주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능욕 받고 채찍질 당하며 죽일 것이나 삼일 만
에 살아나리라는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두 제자가 그럴 때라도 예수님 좌우에서 보좌하겠다고 말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좌우에 결과적으로 제자는 없었습니다.
세상은 그래서 예수님을 실패한 혁명가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실패한 혁명가의 말씀이 온 인류를 회복시키고 살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후에 제자들은 계속 복음을 전하다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방향 십자가의 방향은 세상의 방향과 정말 다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성공은 세상의 성공과 정말 다릅니다.
세상의 가치와 다른 그 십자가의 성공의 길로 일터지기들이 걸어가야 합니다.
쉽지않은 길일 것입니다. 육체가 괴로울 것이고 또 사람들의 비아냥이 들릴 것이고. 어쩌면 예수님이 받았던
능욕, 침뱉음, 눈에 보이지 않는 채찍질에 상처받고 두려울 것입니다. 그래도 걸어가야 하는 것이 십자가의
방향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난 이후를 돌아봤을 때 정말 과연..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와 한국교회에
무엇을 세우고자 하시는지 우리가 그 때 되어져야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분명 이것은 알곡과
가라지를 골라 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일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한국교회가 닥칠 위기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신뢰의 종교가 아니라 민폐의 종교
가 될 것이다. 예수 믿는 거 자체가 부담이 될 것이고 예수 믿는 거 자체가 민폐가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
아내야 합니다.
지금 이시기에 우리의 자세는 ‘교회안에 연약한 자’와 ‘교회밖에 두려워하는 자’를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
다. 스스로 믿음을 지켜나가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선 .. 그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들이 문제가 아
니라.. 그러지 못하고 있는 신앙의 연약한 자들을 우리가 돌보고 세우고 격려하여서 그들이 그 십자가의 길
을 걸어가고 완수해 낼 수 있도록 그래서 세상의 가치기준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기준 안에서 흔들리고 있는
그들의 발걸음을 하나님 나라의 가치 기준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믿음의 행보를 먼저 된 자들이 해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믿습니다.
마가복음 10장 31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세상에서 봤을 때는 예수님의 혁명은 십자가에서 실패한 혁명이지만, 믿음으로 이어나가야할 가장 값진 혁
명이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혁명을 이어가야만 합니다. 그러기위해 연약한 자를 돌봐야 하고 나약한 자를
세워야 되고 주린자를 먹어야 되며 벗은 자를 입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사랑을 전하고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의 혁명가들로 십자가를 높이 세우고 전진해 나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터와 가정과 교회를 지키고 세우는 것이 십자가의 혁명을 이어가는 것임을 믿습니다.
이제 불신의 시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상대를 의심하고 대하듯, 불신의 마스크를 쓰게 된 이 시대에 우
리는 과연 무엇을 하여야할까요? 예수님의 혁명을 이어받은 제자들로 혁명을 이루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다 그렇게 부름을 받았고 우리는 그렇게 제자 된 자들이기에
이러한 위기가 왔을 때 우리가 더욱 더 빛이 되어야 하고
우리가 더욱 더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고 향기로운 모습을 보여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미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그 혁명의 삶을 살아내시는 일터지기들을 통해 일터와 가정과 교회가 살아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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