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예배 3기 (온라인 줌예배) - 선과 악을 행하는 것 (2021. 11.27. - 총배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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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울 작성일 21-12-03 11:01 조회 814 댓글 0본문
(마가복음 3:1-6)
1.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사람들은 사람의 생명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안식일을 이용하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완악함을 탄식하시고 노하셨습니다.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아 율법을 사수하고자 했던 무리인 바리새파들과 정치적 목적으로 새워진 헤롯당은 결코 하나로 뭉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목적으로 뜻을 연합합니다. 놀라운 연합입니다. 그들에겐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아마도 선이었을 겁니다.
율법도 지켜야하고 정치도 안정화시켜야 했으니까요. 예수님이 큰 걸림돌이었을 겁니다. 그들은 안식일의 주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임을 몰랐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이념과 밥그릇을 지키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기에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내세운 공의와 정의만 주장 할 뿐 예수님이 질문하신 선과 악,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에대한 옳으냐는 질문엔 잠잠합니다.
오히려 죽이는 것을 의논하였기에 악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는 선을 선택합니다.
일반 종교 철학도 모두 선을 이야기 합니다. <주역> (문언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積善之家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적선지가필유여경, 적불선지가 필유여앙)
착한 일을 많이 하여 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慶事)가 있고, 나쁜 일을 하여 선을 쌓지 못한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 조차 하나님께서 이 땅에 심어놓으신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깨달아 윤리와 도덕과 철학을 규범삼아 가르치고 후대에게 전합니다.
(갈라디아서 6:7-9)
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는 행위로 구원을 받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면 당연히 선을 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럼 그 선을 받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세상의 기준은 당연히 사람이지만, 우리의 선도 사람을 향하지만 결국 그 선을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세상은 보상을 원하지만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베푼 친절과 선이 때론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우리를 아프게하는 것으로 돌아온다 해도 결코 선을 행하는 것을 낙심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감정이 어떻든 상황이 어떻든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여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그 선을 행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되면 선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삶의 현장인 일터와 가정과 교회에서 믿음으로 선을 행하고 살리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사람들은 사람의 생명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안식일을 이용하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완악함을 탄식하시고 노하셨습니다.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아 율법을 사수하고자 했던 무리인 바리새파들과 정치적 목적으로 새워진 헤롯당은 결코 하나로 뭉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목적으로 뜻을 연합합니다. 놀라운 연합입니다. 그들에겐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아마도 선이었을 겁니다.
율법도 지켜야하고 정치도 안정화시켜야 했으니까요. 예수님이 큰 걸림돌이었을 겁니다. 그들은 안식일의 주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임을 몰랐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이념과 밥그릇을 지키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기에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내세운 공의와 정의만 주장 할 뿐 예수님이 질문하신 선과 악,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에대한 옳으냐는 질문엔 잠잠합니다.
오히려 죽이는 것을 의논하였기에 악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는 선을 선택합니다.
일반 종교 철학도 모두 선을 이야기 합니다. <주역> (문언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積善之家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적선지가필유여경, 적불선지가 필유여앙)
착한 일을 많이 하여 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慶事)가 있고, 나쁜 일을 하여 선을 쌓지 못한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 조차 하나님께서 이 땅에 심어놓으신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깨달아 윤리와 도덕과 철학을 규범삼아 가르치고 후대에게 전합니다.
(갈라디아서 6:7-9)
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는 행위로 구원을 받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면 당연히 선을 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럼 그 선을 받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세상의 기준은 당연히 사람이지만, 우리의 선도 사람을 향하지만 결국 그 선을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세상은 보상을 원하지만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베푼 친절과 선이 때론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우리를 아프게하는 것으로 돌아온다 해도 결코 선을 행하는 것을 낙심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감정이 어떻든 상황이 어떻든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여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그 선을 행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되면 선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삶의 현장인 일터와 가정과 교회에서 믿음으로 선을 행하고 살리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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