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예배 3기 (온라인 줌예배) - 기억하라 (2022.2.26 총배덕 목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바울 작성일 22-03-05 11:48 조회 48,418 댓글 0본문
(신명기 8:1-3)
1.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3.너를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며 너도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약과 신약 성경에 많이 나오는 단어중 하나가 “기억하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을 때 감격스럽고 감사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어려움이 닥치면 늘 리셋되어 잊어버립니다. 정말 기억해야할 땐 기억하지 못하고 잊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시며 또 주리게 하시는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하기 보다 근심, 걱정, 염려, 원망을 하게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먼저 찾기보다 사람의 방법을 먼저 동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가 하나님을 기억해야할 때 임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낮추시고자 주리게하시고 어렵게하셨던 과정을 통해 우리를 성장시키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합니다.
페이스북 최고 운영 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가 한 강연에서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아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바로 “외상후 성장”에 대해 들어보신분 손들어보라고 하였는데 아무도 손을 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통계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례보다 ‘외상후 성장’을 경험한 이들이 많은데도 통상 우리는 성장보다 장애에 더 초점을 맞춘다고 합니다.
PTSD를 겪고 있는 사람들도 치료를 받고 성장을 합니다. 우리의 초점을 어디다 맞추는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장애’가 아닌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시는 과정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와 율법의 차이는 너무도 명확합니다.
율법은 스스로 행한 결과를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고 은혜는 자기가 행한 결과를 맡기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주시는 것입니다.
율법의 한계를 완성해주신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예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산다는 것에 간혹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의 태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하려는 문제가 생깁니다. 게으름을 포장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다고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예비해주시면 내가 가서 할 것이라는 태도는 잘 못된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을 듣고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제사에 사용할 장작을 나귀에 싣고 이삭을 데리고 갔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고 우리가 해야할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해야할 일 조차 하나님 앞에 맡기는 행동은 저는 불경스러운 죄라고 여깁니다.
왜냐? 게으름이고 두려움이고 회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은 문제가 닥치면 바로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고 왜 나를 굶기십니까? 왜 우리는 만나만 먹어야 됩니까? 고기먹으면 안됩니까?라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습니다.
신앙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두려움과 게으름을 포장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머물러있는 ‘영적 히키코모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입은자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신약 성경의 순서가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복음서가 나오고 사도행전이 나옵니다.
영어로는 Acts입니다. 행함. 이제는 복음을 행하는 능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삶,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겐 가정도 일터도 지역교회도 우리가 세워나가야할 하나님 나라이자 우리가 섬겨야할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행한 첫 기적은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못 걷게 된 이를 일으킨 기적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교회의 첫 시작에 일어난 첫 기적이 이렇게 기록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워지는 곳입니다.
은과 금으로 세워지는 곳이 아니라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워지는 곳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곳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퍼져나가는 곳입니다.
은과 금을 모으기 위해 세워진 곳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주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며 우리의 현실을 타개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우리에게 주신 그 이름을 기억하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 사람임을 기억하고 복음을 누리시고 살아내시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3.너를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며 너도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약과 신약 성경에 많이 나오는 단어중 하나가 “기억하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을 때 감격스럽고 감사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어려움이 닥치면 늘 리셋되어 잊어버립니다. 정말 기억해야할 땐 기억하지 못하고 잊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시며 또 주리게 하시는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하기 보다 근심, 걱정, 염려, 원망을 하게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먼저 찾기보다 사람의 방법을 먼저 동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가 하나님을 기억해야할 때 임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낮추시고자 주리게하시고 어렵게하셨던 과정을 통해 우리를 성장시키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합니다.
페이스북 최고 운영 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가 한 강연에서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아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바로 “외상후 성장”에 대해 들어보신분 손들어보라고 하였는데 아무도 손을 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통계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례보다 ‘외상후 성장’을 경험한 이들이 많은데도 통상 우리는 성장보다 장애에 더 초점을 맞춘다고 합니다.
PTSD를 겪고 있는 사람들도 치료를 받고 성장을 합니다. 우리의 초점을 어디다 맞추는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장애’가 아닌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시는 과정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와 율법의 차이는 너무도 명확합니다.
율법은 스스로 행한 결과를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고 은혜는 자기가 행한 결과를 맡기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주시는 것입니다.
율법의 한계를 완성해주신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예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산다는 것에 간혹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의 태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하려는 문제가 생깁니다. 게으름을 포장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다고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예비해주시면 내가 가서 할 것이라는 태도는 잘 못된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을 듣고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제사에 사용할 장작을 나귀에 싣고 이삭을 데리고 갔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고 우리가 해야할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해야할 일 조차 하나님 앞에 맡기는 행동은 저는 불경스러운 죄라고 여깁니다.
왜냐? 게으름이고 두려움이고 회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은 문제가 닥치면 바로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고 왜 나를 굶기십니까? 왜 우리는 만나만 먹어야 됩니까? 고기먹으면 안됩니까?라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습니다.
신앙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두려움과 게으름을 포장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머물러있는 ‘영적 히키코모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입은자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신약 성경의 순서가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복음서가 나오고 사도행전이 나옵니다.
영어로는 Acts입니다. 행함. 이제는 복음을 행하는 능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삶,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겐 가정도 일터도 지역교회도 우리가 세워나가야할 하나님 나라이자 우리가 섬겨야할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행한 첫 기적은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못 걷게 된 이를 일으킨 기적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교회의 첫 시작에 일어난 첫 기적이 이렇게 기록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워지는 곳입니다.
은과 금으로 세워지는 곳이 아니라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워지는 곳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곳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퍼져나가는 곳입니다.
은과 금을 모으기 위해 세워진 곳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주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며 우리의 현실을 타개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우리에게 주신 그 이름을 기억하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 사람임을 기억하고 복음을 누리시고 살아내시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