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3) – 짐이 아니라 격려이신 하나님 (예레미야 18:13~23) 내가 그들을 원수 앞에서 흩어 버리기를 동풍으로 흩어 버리듯 할 것이며, 그들이 재난을 당하는 날, 내가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내 얼굴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아주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남들이 다 쉬거나 노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것은 세상이 보기에는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인이 보기에도 짐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2023(102) – 하나님께 순종하고 초점을 맞추는 삶에 복이 있다 (예레미야 18:1~12) l 이스라엘 백성아, 내가 이 토기장이와 같이 너희를 다룰 수가 없겠느냐? l 나 주의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 안에 있듯이, 너희도 내 손 안에 있다. “ 너희도 내 손 안에 있다 “ 라는 말씀에 대해 묵상합니다. 토기장이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빚는 그릇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가능성>에 대…
2023(101) – 주일은 명령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예레미야 17:19~27) l 너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의 성문 안으로 짐을 가지고 들어오면, l 내가 이 성문에 불을 질러, 예루살렘의 궁궐을 태워 버릴 것이다. 아무도 그 불을 끄지 못할 것이다.’”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의 참된 의미는, 진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살아가는 것…
2023(100) – 철저한 배신, 그리고 그 결과 (예레미야 15:1~9) l 네가 바로 나를 버린 자다. 너는 늘 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l 나는 너를 불쌍히 여기기에도 지쳤다. 너를 멸망시키려고 내가 손을 들었다. 멸망을 시키신 이유는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 때문이라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조차도 지치도록 만들만큼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린 이스라엘 때문입니다. 철저한 배신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철저한 배신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묵상합니다. 우리…
2023(99) –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정확하게 아는 삶이 복입니다 (예레미야 14:13~22) l 주님 우리는 우리의 사악함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l 우리는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l 우리는 오직 주님께만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저라는 존재의 한계와 허탄함을 자백하고 하나님의 권능과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이 땅에서 간절히 구하는 삶을 사는 것, 하나님과 저의 삶을 정의하는 가장 분명한 삶일 것입니다. 그 삶에 관하여 오…
2023(98) –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놀라운 기쁨 (예레미야 12:7~17) l 그들이 수고해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l 그들은 나의 맹렬한 분노 때문에 아무런 소출도 없이 수치만 당하였다. 아무리 수고하고 애를 써도 그들은 소득은 커녕 수치만 당하였다. 하나님의 분노 때문이었다. 수고하고 애를 쓰는 것과 소득을 거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지난주 청소년 수련회 “ 꿈 너머의 꿈 “ 강의를 준비하면서 <애쓰는 것> 과 <결과를 내는 것> 은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다. …
2023(97) – 한 겨리의 소, 구원의 시간 나 주의 말이다. 그 날이 이르면 몸에만 할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내가 모두 벌을 내리겠다. (예레미야 9:25)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소 한 겨리는 소 두 마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
2023(96) – 선악이 아니라 체험이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죄인이다. 무한대에 수렴하는 죄를 가지고 태어나 살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죄의 크고 작음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무한대의 죄라는 영역에서는 죄가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선악의 종교가 아니라 체험의 종교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죄의 경중을 구별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데 선악으로 믿음을 논하는 것이 어떤 구별점을 가지겠는가? 죄의 크고 작음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내가 죄인인 것을 …
2023(95) – 지금 당장 바뀌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7:16~29) l 자식들은 땔감을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고, 어머니들은 하늘 여신에게 줄 빵을 만들려고 가루로 반죽을 하고 있다 l 또 그들은 나의 노를 격동 시키려고, 다른 신들에게 술을 부어 바친다. l 그렇게 함으로써 나를 격노하게 하는 것으로 그치느냐? 그렇지 않다. 오히려 스스로가 수치를 당하는 것이 아니냐? 다른 신들을 섬김으로 인해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스스로가 수치(Shame)를 당한다고 하시는 하나님. …
2023(94) – 마음을 변화시키는 시작점, 입술의 고백 (예레미야 7:1~5) l 너희가 온갖 죄를 지었으므로, 내가 너희에게 서둘러서 경고하였으나, 너희는 듣지 않았다. l 내가 불렀으나, 너희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 주의 말이다. 입으로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을 거부할 뿐 아니라 오히려 거짓을 말하며, 귀로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거부하기 일쑤인 우리는, 입도 귀도 틀어 막고 살아가는 삶이 되고 맙니다. 로마서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